강화도 귀농이야기

우리 음식문화 '비빔밥'

강화신한 2012. 5. 3. 19:59

우리 음식문화 '비빔밥'
2012-05-02

 

한국 밥상의 중심은 밥이다. 밥 한 그릇을 잘 먹기 위해 그 외의 것들이 차려진다. 그 외의 것들이란 국과 반찬이다. 그러니까 밥, 국, 반찬 이 셋이 한국 밥상의 구성 요소이다. 이 세 구성요소의 조합에 따라 한국 음식은 그 주요 분류가 만들어진다. 밥과 국, 반찬을 한 상에 나열하면 백반 또는 한정식이고, 밥에 국을 더하면 국밥이고, 밥에 반찬을 더하면 비빔밥이다. 한국 음식은 거의가 이 세 분류 안에 들어 있다 할 것이다.

 


 

이전에는 곡물을 가루 내어 죽이나 떡을 해서 먹었다. 왜 밥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늦게 한반도의 주식이 되었는가 하면, 무쇠의 공급 때문이다. 삼국시대와 고려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무쇠는 귀하여 무기나 만들 수 있었지 조리기구로는 쓸 수 없었다. 무쇠솥이 없으니 밥을 지을 수 없는 것이다. 밥과 국, 반찬이 한 상에 나열되는 지금의 상차림은 고려 중기 이후에나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밥을 지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반찬과 국도 그 즈음부터 발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의 사정으로는 고기반찬과 고깃국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소는 농사를 짓는 데 꼭 필요한 일꾼이니 함부로 잡을 수 없었고, 돼지는 먹는 게 사람의 것과 비슷하여 먹이 경합을 피하기 위해 많이 키울 수가 없었다. 겨우 닭 몇 마리 키울 수 있었을까 싶다. 또 고려가 육식을 금하는 불교국가였다는 것도 지금의 한국 음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까 한반도의 최초 밥상에 올랐을 음식은 푸성귀 반찬과 국 외는 없었을 것이다.

 


 

소는 여전히 일소였고 돼지와 닭 키우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푸성귀 음식은 여느 민족에 비해 특히 발달하게 되었다. 독성이 있는 풀도 데치고 말려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봄 · 여름 · 가을에는 싱싱한 푸성귀로, 겨울이면 말리거나 소금에 절인 푸성귀를 반찬으로 하여 먹었다. 이 푸성귀의 반찬을 밥에 올려 비비면 비빔밥이다. 따라서 비빔밥은 어느특정의 시기에 어느 누군가에 의해, 또 어느 집단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다 밥과 반찬이라는 밥상 구성에서 자연스럽게 ‘창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도시락으로 밥과 반찬을 따로 싸갔음에도 이를 한데 넣어 칵테일 흔들 듯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정도의 일이라 보면 된다.

  

 

여기에 맛과 간을 보태기 위해 된장, 고추장, 간장을 넣는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요즘의 비빔밥, 정확히는 외식업체의 비빔밥은 푸성귀 외에 달걀, 쇠고기볶음, 육회 등이 올라가는데, 이런 구성은 근대 이후 비빔밥이 외식상품으로 재탄생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대추, 밤, 잣, 김, 황포묵 등등 때깔을 더하기 위한 고명도 근래에 올려졌다. 비빔밥이 이렇게 화려하게 바뀌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때깔을 바꾸면서 그 맛을 놓치고 있는 듯하여 많이 아쉽다. 푸성귀는 생이냐 익히느냐에 따라 그 맛의 차이가 크다. 생으로는 아삭한 조직감이 있고 신선한 풀내를 낸다. 익힌 것은 단맛이 돌고 부드러운 조직감이 있다.

또, 생은 양념을 흡수하지 못하고 익힌 것은 양념 맛을 더할 수 있다. 이 차이로 하여 비빔밥은 두 종류로 나뉘어야 한다. 싱싱한 푸성귀로 한 비빔밥과 익힌 푸성귀로 한 비빔밥. 그에 따라 비비는 장도 달라져야 한다. 싱싱한 푸성귀는 간이 배지 않으니 다소 강한 양념이, 익힌 푸성귀는 간을 하여 올리니 연한 양념이 어울린다. 생푸성귀는 고추장과 된장이, 익힌 푸성귀는 소금이나 간장이 맞다.
 

요즘 외식업체의 비빔밥을 보면, ‘짬뽕’이다. 생 것과 익힌 것이 구별 없이 들어간다. 단지 때깔만을 위한 비빔밥이라 그런 것이다. 여기에 올리는 장도 고추장으로 한정되었다. 문화란 얼마나 섬세한가에 따라 그 성숙도가 결정된다. 비빔밥을 섬세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 그린매거진 5월호에서... >